혁명 이전 프랑스는 영국처럼 화폐 단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으므로 1리브르(livre)=20수(sous)=240도니에(denier)로 구성되었으나, 1795년에 프랑을 도입할 때 십진법 단위를 채용하게 된 1프랑=100상 팀에 단순화되어 공식 교환비는 81리브르=80프랑이었습니다( 정반대로 설명하는 책자에서 수없이인데 이것이 맞습니다).그러나 혁명 후에도 1726년 이후에 만들어진 구체제의 화폐가 장기간 합법적으로 유통되었습니다.이번 혁명 후에도 사용할 수 있었던 옛 화폐의 종류와 그 가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프랑 동전이 제대로 유통되기 전인 초기에는 편의상 1:1에서 유통되는 것이 많았지만 1810년에 제정된 법으로 통용되는 돈.은화의 무게를 반영하고 가치가 새롭게 확립되었습니다.이 가운데 본인의 소장품은 하나도 없었고 사진은 전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1. 2루이(48리브르 금화) 15.3g 90.1% ※도감에서는 91.6%라고 쓰여져 있지만, 19세기에 프랑스 정부가 발간한 책자에서는 90.1%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블과 프랑의 교환 요금이 81:80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47.41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해 공식 액면이 47.2프랑이 됐지만 정량에 비해 0.4%가량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계산하기 어려운 것 이외에는 무사히 통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의 40프랑 금화도 ‘2루이’ 혹은 ‘2나폴레옹’으로 대신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1. 2루이(48리브르 금화) 15.3g 90.1% ※도감에서는 91.6%라고 쓰여져 있지만, 19세기에 프랑스 정부가 발간한 책자에서는 90.1%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블과 프랑의 교환 요금이 81:80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47.41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해 공식 액면이 47.2프랑이 됐지만 정량에 비해 0.4%가량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계산하기 어려운 것 이외에는 무사히 통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의 40프랑 금화도 ‘2루이’ 혹은 ‘2나폴레옹’으로 대신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2. 1루이(24리브르 금화) 7.65g 90.1% 공식 중량상 새 화폐로 23.7프랑에 해당하였으나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하여 공식 액면이 23.55프랑이 되었으나 정량에 비해 0.6% 정도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을 감안하면 계산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는 잘 사용되었을 것이고, 1834년까지 이 가격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의 20프랑 금화도 ‘루이 금화’ 혹은 ‘나폴레옹 금화’로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2. 1루이(24리브르 금화) 7.65g 90.1% 공식 중량상 새 화폐로 23.7프랑에 해당하였으나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하여 공식 액면이 23.55프랑이 되었으나 정량에 비해 0.6% 정도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을 감안하면 계산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는 잘 사용되었을 것이고, 1834년까지 이 가격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의 20프랑 금화도 ‘루이 금화’ 혹은 ‘나폴레옹 금화’로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3. 1에퀴(6리브르120스) 은화 29.49g 90.6%? ※도감에서는 91.6%라고 쓰여져 있지만, 19세기에 프랑스 정부가 발간한 책자에서는 90.6%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블과 프랑의 교환 요금이 81:80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5.93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해 공식 액면이 5.8프랑이 됐지만 정량에 비해 2.2% 정도 낮습니다. 마모가 전혀 되지 않고 무게 손실이 없는 은화는 아마도 프리미엄을 위해 녹아 은괴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그 후의 5프랑 은화도 상당 기간 「에퀴」라고 칭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 1에퀴(6리브르120스) 은화 29.49g 90.6%? ※도감에서는 91.6%라고 쓰여져 있지만, 19세기에 프랑스 정부가 발간한 책자에서는 90.6%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블과 프랑의 교환 요금이 81:80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5.93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해 공식 액면이 5.8프랑이 됐지만 정량에 비해 2.2% 정도 낮습니다. 마모가 전혀 되지 않고 무게 손실이 없는 은화는 아마도 프리미엄을 위해 녹아 은괴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그 후의 5프랑 은화도 상당 기간 「에퀴」라고 칭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 1/2 에퀴(3리브르, 60스) 은화 14.74g 90.6% 공식 중량상 새 화폐로 2.965프랑에 해당하였으나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하여 공식 액면이 2.75프랑이 되었으나 정량에 비해 7.3% 정도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이 액면의 1.5% 정도였다면 1810년 이후에는 13.9g 이하의 것까지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경우 프리미엄을 위해 녹아 은괴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 범위 안에 들어가는 은화는 매우 마모된 축에 속하지만, 어쨌든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4. 1/2 에퀴(3리브르, 60스) 은화 14.74g 90.6% 공식 중량상 새 화폐로 2.965프랑에 해당하였으나 1810년 9월부터는 마모를 감안하여 공식 액면이 2.75프랑이 되었으나 정량에 비해 7.3% 정도 낮습니다. 녹이는 비용이 액면의 1.5% 정도였다면 1810년 이후에는 13.9g 이하의 것까지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경우 프리미엄을 위해 녹아 은괴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 범위 안에 들어가는 은화는 매우 마모된 축에 속하지만, 어쨌든 1834년까지 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5. 30수(1.5리브르, 1/4엑이)은화 10.15g66%, 루이 14세 이전에 만든 동전이 아니라 혁명 초기의 1791~92년에 만든 놈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공식 환율상 새 화폐로 1.48프랑에 해당하고 1810년 9월 법에 의해서 1.5프랑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마모를 감안하고 한번에 5프랑 이상을 사용할 수 없는 보조 화폐가 되었습니다.1845년까지 사용 가능하며, 1846년 8월까지 통용 중 화폐로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혁명 이전에 발행된 1/5,1/10에 쿠이, 1/20에 쿠이의 경우 1810년 법에서 “무늬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경우”각각 1프랑, 50상 팀, 25상 팀으로 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조금 애매하고 그 정도의 상태의 코인으로 있으면 은 값이 액면가 10%이상 초과하는 관계로 1834년 공식 통용이 중단되는 전에도 조용히 퇴장당한 것입니다.
1790년대에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마모된 15,30개의 수은화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무려 1845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790년대에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마모된 15,30개의 수은화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무려 1845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6. 15수(0.75리브, 1/8 에퀴) 은화 5.075g 66% 루이 14세 이전에 만든 동전이 아니라 1791992년에 만든 것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0.74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 법에 따라 0.75프랑으로 사용하면서 한번에 5프랑 이상을 사용할 수 없는 보조화폐가 되었습니다. 30석처럼 1790년대에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마모된 은화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30석과 마찬가지로 1845년까지 거의 정가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6. 15수(0.75리브, 1/8 에퀴) 은화 5.075g 66% 루이 14세 이전에 만든 동전이 아니라 1791992년에 만든 것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 무게상 새 화폐로 0.74프랑에 해당했지만 1810년 9월 법에 따라 0.75프랑으로 사용하면서 한번에 5프랑 이상을 사용할 수 없는 보조화폐가 되었습니다. 30석처럼 1790년대에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마모된 은화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30석과 마찬가지로 1845년까지 거의 정가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7. 2수빌론화(1/10리브, 1/60에퀴) 2.0g 20.3% 루이 15세의 제위기였던 1764년까지 발행된 저순도의 은화(빌론)인데 웬일인지 1846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무게나 은의 합량이 나폴레옹 시대의 십상팀 동전과 비슷하지만 1804년 가치가 7·5상팀으로 줄었고, 이후 ‘6liard(=18드니에)’ 동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80년 전에 단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46년에 폐지되기 직전까지 시판되고 있었습니다. 7. 2수빌론화(1/10리브, 1/60에퀴) 2.0g 20.3% 루이 15세의 제위기였던 1764년까지 발행된 저순도의 은화(빌론)인데 웬일인지 1846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무게나 은의 합량이 나폴레옹 시대의 십상팀 동전과 비슷하지만 1804년 가치가 7·5상팀으로 줄었고, 이후 ‘6liard(=18드니에)’ 동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80년 전에 단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46년에 폐지되기 직전까지 시판되고 있었습니다.
8. 2촌동화(8liard, 24드니에) 2325g 1856년까지는 10상 팀처럼 썼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10상 팀의 동전을 ‘2되’라고 칭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무게가 비슷한 고대 로마의 세스테르티우스 동화를 두 수처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땅을 파면 고대 주화가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8. 2촌동화(8liard, 24드니에) 2325g 1856년까지는 10상 팀처럼 썼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10상 팀의 동전을 ‘2되’라고 칭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무게가 비슷한 고대 로마의 세스테르티우스 동화를 두 수처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땅을 파면 고대 주화가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9. 1수 동화(4liard, 12도니에) 10~12g 1856년까지는 5상 팀처럼 쓸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5상팀의 동전을 “1되”라고 칭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무게가 비슷한 고대 로마의 아스나 뒤퐁디우스 동화를 한 수처럼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9. 1수 동화(4liard, 12도니에) 10~12g 1856년까지는 5상 팀처럼 쓸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5상팀의 동전을 “1되”라고 칭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무게가 비슷한 고대 로마의 아스나 뒤퐁디우스 동화를 한 수처럼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10. 6 드니에 동화 (=2 liard) 6g 1856년까지 2.5상 팀처럼 적었습니다. 10. 6 드니에 동화 (=2 liard) 6g 1856년까지 2.5상 팀처럼 적었습니다.
11. 3드니에 동화 (= liard) 3g 1856년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위키에서는 ‘2상 팀’처럼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상황상으로는 ‘1.25 내지는 1상 팀’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널리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네요. 11. 3드니에 동화 (= liard) 3g 1856년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위키에서는 ‘2상 팀’처럼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상황상으로는 ‘1.25 내지는 1상 팀’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널리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네요.